한민족의 국통맥

3.1절과 대한민국임시정부

3.1정신이란 무엇인가? 3.1운동의 3대 원칙은 비폭력으로 평화적이었으며, 대동단결해서 국민 모두가 일어났다는 점이다. 바로 비폭력이 폭력보다 더 무서운 저항이라는 것을 증명하며 온 국민이 한마음으로 만세운동을 펼쳤다. 또한 3.1만세 운동은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참여한 운동이라는 것이 더 놀라운 일이다.

3.1운동이 일어나던 그 해, 우리 독립운동가들은 세계정세를 훤히 꿰뚫고 있었다. 일제의 엄혹한 감시 속에서도 독립운동가들은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서로서로 연락을 하며 독립을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촉각을 세우고 있었다.

3.1운동이 일어나기 직전인 19191월에 세계 1차 대전의 전승국 정상들이 파리에 모였다. 그들은 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약소국들의 뒤처리를 위하여 머리를 맞댔다. 바로 파리강화회의였다. 이 회의에서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은 식민지 상태에서 해방과 독립을 열망하는 약소국가들이 스스로 독립을 할 수 있다는 민족자결주의를 선포했다. 이 소식은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독립운동가들에게 단비처럼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앞다투어 독립선언을 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독립선언은 무오 독립선언이었다. 191921일 만주에서 김좌진, 신채호, 박은식, 안창호, 이동휘, 이승만 등 39인이 독립을 선언했다. 조소앙 선생이 작성한 독립선언서에는 "일본은 국제법규의 악마이고 인류의 적이다." 라고 되어 있다.

뒤이어 일본 동경의 히비야 공원에서 유학생들이 모여 독립선언을 했다. 바로 2.8 독립선언이다. 28일 동경의 유학생들은 YMCA 강당에 모여 독립선언을 하기로 하고 히비야 공원에서 만세를 불렀다. 유학생들은 각국 대사관과 국회의원 총독부등 일본의 여러 신문사에 독립선언문을 발송했다. 이광수는 선언문 작성 후 상하이로 몸을 피했다.

국내에서는 31일 고종의 인산일(33)을 맞아 전국에서 모인 인파들과 탑골공원에 모여있던 학생들을 시작으로 전국으로 만세운동이 퍼져나갔다.

민족대표 33인은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을 하려 했으나 운집한 학생들과 일본경찰이 맞붙으면 인명피해가 발생할 것을 우려해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바로 총독부에 자진해서 잡혀갔다.

3.1만세 운동은 두만강을 넘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도 울려 퍼졌다. 독립운동가 최재형은 삼일문을 세우고 시가행진을 하며 만세를 외쳤다.

한편 상해에 있는 신한청년당은 영어에 능통한 김규식을 신한청년당 대표자격으로 파리에 보내 강화회의에 가서 독립을 주장하게 한다. 김규식은 191921일 신한청년당 대표 자격으로 파리로 출발해서 313일에 파리에 도착했다. 김규식은 곧바로 파리에 한국공보국을 설치했다. 그러나 파리 강화회의에서는 정부를 대표하는 자격이라야 회의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김규식은 서둘러 임시정부를 조직하라는 소식을 각지에 보낸다. 이 소식에 고무된 독립운동가들은 하루빨리 임시정부를 세워야 한다는 주장에 따라 곳곳에서 무려 일곱 개의 임시정부가 생겨난다. 그러나 일곱 개 중 세 개만 조직과 실체가 있고 네 개는 이름만 있는 상황이었다.

최초의 임시정부는 러시아 우수리스크에서 조직되었다. 최재형을 비롯 문창범, 유인석, 홍범도, 신채호 등 무장투쟁으로 독립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연해주의 독립운동가들은 가장 먼저 의회정부를 세우고 이름을 대한국민의회로 칭한다. 임시정부 중에서 가장 빠른 1919317일이었다. 대한국민의회의 전신은 전로한족중앙총회였다. 러시아 혁명 이후 러시아에 살던 한인들 전체를 망라하는 전로한족중앙총회를 결성했고 그 중심에 최재형이 있었다. 이 모임이 발전해 대한국민의회인 최초의 임시정부가 생긴 것이다. 대한국민의회의 의장은 문창범이었다. 문창범은 최재형과 함께 우수리스크 한인들의 양대 산맥으로, 러시아에 사는 한인들은 최재형을 자신들의 대부라 칭하고, 문창범은 우리들의 대통령이라 불렀다. 최재형은 대한국민의회의 외교부장을 맡는다. 대한국민의회는 곧바로 윤해와 고창일을 임시정부 대표로 파리에 보내기로 결정한다.

 

 

한편 상해에 모인 독립운동가들은 무장투쟁보다 외교로 독립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상해에서 비교적 안전한 프랑스 조계지 김신부로에서 1919410일 임시의정원 회의가 열린다. 의정원 회의에 참석한 독립운동가들은 모두 27명이었다. 회의는 밤을 새우며 다음 날 아침까지 꼬박 24시간이 걸렸다. 이 회의에서 국호를 정하고, 임시헌장을 만들고, 초대 내각을 결정하여, 바로 다음 날인 411일에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발표했다. 국호는 대한제국을 잇는 정부라는 뜻으로 대한으로 하고 백성이 주인인 나라라는 뜻으로 민국을 결정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탄생한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내각도 선정했다. 대통령은 없고 국무총리부터 살펴보면 국무총리에는 미국에 있는 이승만, 외교부장에 파리에 가 있는 김규식, 내무총장에 역시 미국에 있는 안창호, 법무총장에 이시영을 선정하고, 러시아 연해주에서 중심적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들 세 명을 선정했다. 러시아파 세 명 중에 군무총장에 이동휘, 재무총장에 최재형, 교통총장에 문창범이었다.

초대내각 중에 러시아 파가 세 명이나 들어간 것은 러시아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의 기초를 다지면서 무장투쟁을 강력히 주장했던 러시아파를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대한민국 임시헌장은 총 10개조로 되어 있는데 주요 내용을 살펴보자.

 

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

2조 대한민국은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결의에 의하여 이를 통치함.

3조 대한민국의 국민은 남녀, 빈부 및 계급 없이 일체 평등으로 함.

4조 대한민국의 국민은 종교, 언론, 출판, 결사, 집회, 주소이전, 신체 및 소유의 자유를 향유함. -하략-

 

위의 임시헌장을 살펴보면 많은 부분이 3.1정신과 맞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상해에서도 임시정부가 조직되자마자 파리에 가 있는 김규식을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총장 겸 파리강화회의 대표로 파리강화회의장에 들어갈 수 있게 했다. 김규식은 독립청원서를 작성하여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했지만 일본의 방해로 청원서는 상정되지 못했다.

한편 한성에서도 42313도 대표가 모여 임시정부를 조직했다. 특이할 만 한 것은 이승만을 집정관 총재로 선정한 것이다. 이승만의 직함은 411일 상해에서 설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는 국무총리로, 423일 한성에서 조직된 한성임시정부에서는 집정관총재로, 그 이후 안창호가 미국에서 상해로 와서 3개의 임시정부를 통합해서 재정비한 통합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대통령으로 칭했다.

26년 동안 중국 땅에서 지켜낸 임시정부는 수많은 우여곡절과 위기를 겪었다. 우선 임시정부의 재원마련이 큰 난관이었다. 온 국민의 독립에 대한 열망은 당시 멕시코에 팔려간 기민들도 동참했다. 가시가 너무 많아 마귀나무라고도 불리고, 어저귀라고 불린 용설란을 잘라내는 멕시코 농장에서 한인들은 자신들의 허리띠를 졸라매며 피눈물이 담긴 독립자금을 보냈다.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도 남의 나라에서 뼈 빠지게 일을 하면서도 독립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 위해 주린 배를 참아내며 독립자금을 보냈다.

특히 국내로 잠입해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독립자금을 모금해서 상해까지 가져가는 일은 목숨을 내어 놓는 일이었다. 이때 파란 눈의 아일랜드인이 이륭양행 회사를 운영하며 독립운동가들이 상해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도왔는데 그가 바로 죠지 쇼우이다. 아일랜드인 죠지 쇼우도 아일랜드와 영국이 독립전쟁을 하는 시기였기에 일본과 독립전쟁을 하는 한국인들을 동병상린으로 도운 것이다.

그러나 독립자금은 늘 부족했고 임시정부는 늘 위태위태했다. 이즈음 임시정부 초기에 문지기라도 시켜 달라던 김구가 임시정부 수장을 맡게 된다. 김구는 임시정부에 획기적으로 변화와 활력을 얻기 위해 안중근 의사의 막내 동생인 안공근과 한인애국단을 조직한다. 한인애국단 첫 번째 단원이 이봉창이었다. 한인애국단 단원 이봉창 의사는 19321월 동경으로 가서 일왕이 타고 가는 마차에 폭탄을 던진다. 그러나 일왕은 다른 마차에 타고 있어서 일왕척살은 실패하고 만다. 하지만 대한의 청년이 과감하게 일왕을 향해 폭탄을 던진 일은 세계가 놀랄만한 일이었다. 이봉창 의사의 나이 31세였다.

그 후 두 번째 한인애국단이 김구를 찾아간다. 바로 윤봉길 의사였다. 윤봉길 의사는 1932429일 상해 홍커우 공원에서 의거를 단행했다. 일제는 일왕의 생일인 천장절을 맞아 홍커우 공원에서 상하이 점령 전승 경축식을 열었다. 바로 이 자리에서 윤봉길 의사는 기념식 단상으로 폭탄을 던졌다. 이날 기념식에 참석했던 일본의 시라카와 대장과 거류민단장인 가와바타가 사망했고 노무라 중장과 시게미쓰 공사가 중상을 입었다.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 공원 거사는 꺼져 갈 듯 한 임시정부에게 생명줄을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윤봉길 의거가 한인애국단이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김구에게는 58억원의 현상금이 붙었다. 상해 프랑스 조계지에 있는 임시정부를 급습한 일본은 안창호를 체포하고 김구를 찾는데 혈안이 된다. 한편 김구는 미국인 선교사 죠지 애쉬모어 피치 부부의 기묘한 도움으로 자싱으로 탈출한다. 당시 죠지 애쉬모어 피치는 윤봉길 의거 후 자기 집에 김구와 임시정부 요인들을 숨겨주었는데 일본의 감시가 심해지자 자신의 차 뒷자리에 김구와 부인을 태우고 자기는 운전사로 가장해 김구를 무사히 자싱으로 피난시킨다.

임시정부는 항주로 피난을 갔고 김구는 자싱에서 중국여성 뱃사공 주애보와 가짜 부부행세를 하며 숨어 지내면서 임정을 이끈다.

중국 국민당 정부는 윤봉길 의거 후 임시정부를 적극적으로 돕게 되는데 중일전쟁이 일어나 국민당 정부가 난징에서 충칭으로 가면서 대한민국임시정부도 충칭으로 갈 수 있게 돕는다. 김구는 국민당 정부와 먼저 충칭으로 가고 항주에 있던 임시정부 요인들과 가족들은 충칭까지 육로 3천리, 수로 3천리의 머나먼 여정을 감행한다.

임시정부는 남의 나라 중국 땅에서 상해, 자싱, 항주, 충칭을 거쳐 26년간 독립을 위해 싸우며 지켜내다가 충칭에서 해방을 맞는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지난했던 일제 강점기 끊임없이 일제를 상대로 싸우며 조국독립투쟁을 중단하지 않았다. 혹자는 일본이 원폭을 당해 저절로 우리나라가 독립을 할 수 있었다고 말하지만, 일제강점기 동안에도 우리는 한 번도 쉬지 않고 독립투쟁을 이어온 것이 중요하다.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우리의 자긍심을 말할 것인가.

물론 연합군이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했고 일본이 항복을 했지만, 우리는 임시정부를 이끌며 광복군을 창설하고 연합군과 함께 작전을 수행하기도 했다. 이러한 자존감이 우리나라를 오늘에 이르게 한 원동력이 아닐까?

105주년 삼일절! 이 글을 쓰는 나는 지금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와 있다. 비행기로 12시간을 날아와 마주하는 부다페스트의 거리에서 삼성과 엘지와 현대의 우뚝 서 있는 광고판을 마주하며 대한민국의 위상을 느낀다.

105년 전, 온 국민이 만세운동을 벌였던 대한민국, 국내외에서 독립을 위해 피를 흘렸던 선열들을 생각하며 그분들이 흘린 피와 땀의 대가가 우리 대한민국을 세계 6위의 위상에 올려놓은 위대한 정신이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우리는 더 앞으로 나갈 것이다. 비폭력 무저항 정신으로. 국민들의 자존감을 높이며 세계로 벋어 나갈 것이다.

0
0
이 글을 페이스북으로 퍼가기 이 글을 트위터로 퍼가기 이 글을 카카오스토리로 퍼가기 이 글을 밴드로 퍼가기

한민족의 국통맥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
19 3.1절과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한뉴스 2025-06-30 5
18 대한제국과 국민전쟁 대한뉴스 2025-06-30 9
17 ‘조선’ 이라는 나라 이름의 의미 대한뉴스 2025-06-30 5
16 고려 서경(西京) 위치 대한뉴스 2025-06-30 8
15 『환단고기』와 『요사』를 통해서 본 대진국 5경의 위치 대한뉴스 2025-06-30 6
14 한일 고대사의 비밀을 담고 있는 가야의 역사 대한뉴스 2025-06-30 5
13 1천년 신라의 첫 발걸음: 건국의 여정 대한뉴스 2025-06-30 6
12 백제는 서기전 31년에 소서노가 요서지역에서 건국하였다 대한뉴스 2025-06-30 6
11 「광개토태왕비문」과 『환단고기』의 정합성 대한뉴스 2025-06-30 6
10 한국사의 잃어버린 고리, 북부여 대한뉴스 2025-06-30 6
9 조선의 건국자, 단군은 살아있다 대한뉴스 2025-06-30 9
8 환웅천왕과 밝달나라[배달국倍達國] 대한뉴스 2025-06-25 12
7 문명사를 개척한 수메르(메소포타미아) 대한뉴스 2025-06-25 8
6 『삼국유사』와 ‘석유환국’‘석유환인’ 논쟁 대한뉴스 2025-06-25 8
5 문헌으로 살펴보는 환국 대한뉴스 2025-06-25 9
4 환국문화의 고향 유라시아를 가다!(환단고기 북콘서트 다시보기) 대한뉴스 2025-06-25 9
3 빛의 나라, 무병장수의 나라 환국 대한뉴스 2025-06-25 8
2 환국, 무병장수를 누린 황금시대 대한뉴스 2025-06-25 11
1 sadf 대한사랑 2025-04-29 13
EnglishFrenchGermanItalianJapaneseKoreanPortugueseRussianSpanishJavane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