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국통맥

환웅천왕과 밝달나라[배달국倍達國]

상고 사람들이 그 근본을 잊지 못하여


邃初之人, 不忘其本, 創立寺宇.

상고 사람들이 그 근본을 잊지 못하여 사우를 창립했다.

단종실록즉위년 6월 기사

 

조선시대 비운의 왕인 단종이 즉위한 해에 황해도에 전염병이 돌았다. 그 지역 백성들이 흔적도 없을 정도로 죽어 나갔다. 경창부윤 이선제가 고민 끝에 상서를 올린다. 본래 황해도 문화현 구월산에 있는 삼성당(三聖堂)에 모시고 있던 단군을 기자사당이 있는 평양으로 옮긴 뒤에 전염병이 돌았다는 민심을 전한다.

그러나 그는 상서의 후반부에서 좀 더 근본적인 이유와 해결책을 말한다. 선대에 우의정을 지낸 유관의 상서와 고려시대 사서인 삼국유사와 사초를 통해 본질적인 원인을 생각했다. 단지 단군을 기자의 사당이 있는 평양으로 옮겨서가 아니고 이성(二聖)인 환인과 환웅을 소홀히 모신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삼성당(三聖堂)을 수리해서 세 분[환인, 환웅, 단군]의 신상(神像)을 새로 만들어 관리를 파견해서 예전처럼 존경하고 도와주기를 기원하면 해결될 것이라고 했다.

그의 상서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할 부분이 있다. 그는 환인과 환웅, 단군을 모시는 삼성당이 어느 시대에 창건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상고시대부터 세 분을 역사의 시조로 생각하고 그 근본을 잊지 못하여 사당을 지어 모셨다고 했다. 바로 조선 전기에는 환인과 환웅, 그리고 단군을 우리 역사의 시조로 생각하는 전통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승정원일기를 통해 환인과 환웅, 그리고 단군을 모시는 전통은 조선 말기까지 이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삼국유사고조선조와 환웅천왕

환웅천왕에 관한 가장 오래 된 기록은 고려 충렬왕 7(1281)에 승려 일연이 쓴 것으로 알려진 삼국유사이다. 삼국유사는 전체 5권으로 이루어졌는데, 5권내에 다시 9편으로 나뉘어 있다. 그 중에서 권1 기이(紀異) 1[고조선]에 관한 기록을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위의 기록은 단군의 고조선 건국이 주된 내용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고조선조의 서술내용을 보면 이야기의 중심에 환웅천왕이 있다.

고조선조의 글자 수는 주석을 포함해 전체 437자이다. 모두 3가지 사료를 인용했는데 위서고기, 그리고 당배구전이다. 그 중에서 환웅에 관한 기록은 고기324자에만 나온다. 324자를 보면 환웅 관련 기사가 246자이고 단군 관련 기사는 78자이다. 물론 전체 437자를 기준으로 보아도 환웅 관련 기사가 246자로 56%를 차지한다. 그 만큼 삼국유사고조선조의 내용은 환웅천왕을 중심으로 한 신시(神市) 건국 이야기이다.


환웅천왕과 신시(神市)

고조선조의 중심 사료인 고기를 보면 환인의 통치시대 말기에 서자부의 환웅이 자주 천하에 뜻을 갖고 세상을 구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었다. 환인께서 환웅의 뜻을 아시고 삼위태백의 땅이 홍익인간(弘益人間)할 수 있는 곳으로 생각하셨다. 마침내 환웅에게 천부인 세 개를 주시어 그 곳으로 보내어 다스리게 하셨다. 환웅께서 낭도 3천명을 이끌고 태백산 지역으로 가시어 신단수 아래를 중심으로 신시(神市)를 여시고 천왕(天王)으로 등극하신다. 환웅께서는 삼백오가[風伯·雨師·雲師·主穀·主命·主病·主刑·主善惡]조직을 중심으로 세상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시고, 신교의 진리로 다스려 교화를 펼치셨다.

이때 한 마리의 곰과 호랑이가 신령스런 환웅께 사람되기를 기원한다. 환웅께서 쑥과 마늘을 주시면서 이것을 먹으면서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아야 사람의 참모습을 얻게 된다.”는 계율을 내리신다. 결국 곰과 호랑이는 쑥과 마늘을 먹으면서 삼칠일[21]을 삼가 곰은 여자의 모습을 얻었으나, 호랑이는 금기를 지키지 못해 사람의 참모습을 얻지 못했다. 마침내 환웅께서 여자의 모습을 얻은 웅녀와 혼인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이 분이 고조선의 창업자 단군왕검이시라는 내용이 설화의 형태로 기록되어 있다.


신시고국과 환웅시대

우리나라 사학계는 한국사 시대구분을 주체적 사관으로 하지 않는다. 교과서를 비롯해 박물관의 전시를 보면 한국사는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시대 또는 고대, 중세, 근대 등의 상투적인 시대 구분론을 하고 있다. 삼국시대 이후에는 국가 명을 짜 맞추어 넣는 방식이다. 또한 다른 나라는 서기전 3,000~5,000년에 이미 일정한 초기 국가가 형성되었다고 하는데, 한국사만 서기 전후 100년 사이에 초기국가가 형성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80년대 이후 몇몇 학자들의 삼국유사』 「고조선에 나오는 환웅의 신시 건국에 대한 연구가 주목된다. 윤내현은 고조선조의 환웅 관련기록을 농업을 중심으로 정착생활을 시작한 마을사회단계로 이해하면서 환웅과 곰녀[熊女]의 혼인을 여러 마을들이 연맹을 맺었던 고을나라단계로 해석하면서 역사적 사건[史實]으로 해석하고 있다.

임재해는 더 나아가 환웅의 신시고국(神市古國)은 단군왕검의 조선 건국 이전의 역사로 잠시 존재하다 소멸된 것이 아니라 수 천 년 뒤까지 민족사의 정치적 이념과 문화적 정체성을 지속시킨 문화적 유전자 구실을 하는 살아 있는 역사로 강조한다. 그는 자국사의 시대구분을 자국사 중심으로 하지 못하는 것은 식민사학의 폐단이라고 지적하면서 환웅의 신시고국을 환웅시대로 정명하고 있다.


환웅의 배달국 개천기, [삼성기]

설화 형식으로 기록된 일연의 삼국유사고조선조를 보완할 수 있는 기록이 환단고기를 구성하고 있는 삼성기이다. 삼성기는 신라 진평왕[26대 왕 ; 567~632] 시기의 대표적인 승려인 안함로가 쓴 것과 고려 말의 인물로 추정되는 원동중이 쓴 것이 있다.

안함로의 삼성기는 환웅천왕께서 건국한 나라의 이름과 도읍지를 분명하게 기록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신시는 도읍을 말하고 나라 이름은 배달이라는 것이다. 신시를 중심으로 한 전기 환웅시대는 청구 지역을 개척해 후기 환웅시대를 열었는데 그 중심인물이 치우천왕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배달국의 역년이 18()를 전해 1,565년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800여 년 뒤에 쓰여 진 원동중의 삼성기는 개천의 역사를 정확히 기록하고 있다. 단군왕검의 고조선 건국이 아닌 환웅천왕께서 신시를 중심으로 배달국을 연 것이 개천(開天)’이다. 무엇보다 원동중의 삼성기는 배달국의 18세 천황의 이름과 재위기간이 기록되어 있다. 초대 환웅천황은 거발환이시고 후기 환웅시대를 여신 치우천왕은 바로 14대 천황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홍산문화 발굴로 증명되는 문헌기록

20세기 동북아 최대 고고학 발굴이 중국 요서지역에서 드러난 홍산문화이다. 홍산문화 발굴을 통해 드러난 유적과 유물을 보면 신석기 시대임에도 국가의 규모를 보여준다. 특히 우하량 지역에서 발굴된 돌무덤[]과 신전[], 그리고 제단[]은 기존 신석기 문화 유적에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모습으로 총··단이 한꺼번에 발굴된 것은 주목할 내용이다.

홍산문화 우하량의 16개 유적지 가운데 13곳이 돌무덤[적석총] 유적지다. 적석총은 고대의 대표적인 동이족의 묘제로 화하족의 토광묘와는 다르다. 특히 주목할 곳은 우하량 제 2지점의 방형(方形) 적석총이다. ‘중심에 큰 적석총과 그것을 에워싼 ‘27기의 석관묘는 홍산인들이 국가 단계의 문명을 누렸음을 시사한다.

우하량 제 2지점에서 발굴된 원형(圓形) 제단은 홍산인들의 정신문화를 보여주는 또 다른 모습이다. 5,500년 전에 세운 우하량 제단은 동북아 제천단의 원형(原型)으로 제천문화의 뿌리이다.

또한 우하량 제 1지점에서 발굴된 신전[]의 주인공은 뜻밖에도 여신이었다. 반지하식 구조로 지은 여신묘 터에서는 여신상과 함께 주실(主室)에서는 곰 소조상, 그리고 북실(北室)에서는 새 소조상이 출토되었다.

홍산문화 발굴 초기에는 중국에서 자신들의 문헌으로 해석할 수 없어서 신비의 왕국으로 불렀다. 그러나 우리는 삼국유사고조선조와 삼성기,하의 문헌 기록을 통해 환웅천왕의 배달국 시대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홍산문화는 신석기 말기의 문화로 석기와 청동기를 섞어 사용한 BCE 4,500~BCE 3,000년경의 문화로 약 1,500년 동안 지속되었다. 홍산문화에서 발굴된 유적은 환웅께서 배달국을 건국한 이후 웅족과 호족이 환웅천왕을 찾아와 환족(桓族)으로 교화되기를 원한 사건과 부합하는 것이다. 바로 홍산문화는 환웅천왕의 배달국 문화로 추정할 수 있다.


환웅천왕과 오한기 남신상

20125월 중국 내몽골자치구 적봉시 오한기 지역의 집터에서 흙으로 구워 만든 남신상이 발견됐다. 홍산문화 우하량 유적에서 여신상이 발굴된 적은 있지만 남신상이 발굴된 것은 처음이었다. 인민일보와 CCTV 등 대표적인 중국 언론들은 “5,300년 전의 중화조신(中華祖神)을 찾았다는 내용으로 대대적인 보도를 했다.

최초로 집터에서 남신상의 얼굴 파편을 발견한 오한기박물관의 관원인 왕제와 박물관장 전언국을 비롯한 발굴팀은 열흘 동안 65개의 도기 조각을 발견했다. 흥미롭게도 도기 조각을 복원한 결과 55크기의 남자 인물상이었다. 전체적인 인물상의 모습은 반가부좌 수행자세로 두 손은 공수의 모습으로 하단전에 가지런히 모아져 있다. 특히 백회가 뚫려 있고 입을 둥글게 벌리고 있는 것이 흥미로운 점이다.

과연 중국인들의 조상신인가? 중국에서는 남신상의 유물을 초상화로도 복원했다. 그런데 본래 발견된 남신상의 모습과 다른 점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본래 유물은 입을 동그랗게 벌리고 있는데 복원한 초상화는 굳게 다물고 있다. 중국 발굴팀은 샤먼[] 혹은 왕으로 추정했다. 그런데 초상화로 복원하면서 입의 모양을 의미 없는 것으로 여긴 것이다. 왜 그럴까? 중국에는 남신상의 모습을 해석할 문헌 기록이 없는 것이다.



폐문자수(閉門自修) 주원유공(呪願有功)

문을 닫고 수행하면서 서원을 세우고 주문을 읽어 공덕을 이루시다.

삼성기

 

내이주술(乃以呪術) 환골이신(換骨移神)

신령한 주문의 힘으로 몸과 정신을 변화시키다.

삼성기

 

삼국유사고조선조에서는 신령스런 환웅’[神雄]으로만 표현되었지만 삼성기에서는 환웅천왕께서 삼칠일[21]을 정하고 직접 주문을 읽으면서 몸과 정신을 변화시켜 공덕을 이루시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5,300년 전 유물로 추정하는 오한기 남신 도소상을 해석할 수 있는 문헌기록을 완벽하게 갖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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