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국통맥

『삼국유사』와 ‘석유환국’‘석유환인’ 논쟁

옛날에 환국이 있었다(昔有桓國).”

 

삼국유사의 서두를 장식하는 이 짧은 문장은 단지 한 줄짜리 고문이 아니다. 그것은 한민족 상고사의 시작을 증언하는 문이며, 동시에 이를 지우려는 세력과 이를 지키려는 민족지성 간의 첨예한 대립이 응축된 상징이다.

국가성립사

신화 속 3대 인물사

환국 환인

배달 환웅

조선 단군

 

문제는 삼국유사』 「기이<고조선>기의 해당 한자를 환국(桓囯)으로 보느냐 환인(桓因)으로 보느냐,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고대사의 성격은 문명사로 이어질 수도 있고, 단지 신화로 축소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민족사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환국은 환인께서 다스린 실존 국가이며, 환인의 나라 환국에서 환웅의 나라 배달국으로 이어져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하는 고대사 3단계 구조의 시발점이다. 반면, ‘환인(桓因)’으로 해석하면 환국이라는 국가 개념은 사라지고, 환인은 단순한 하늘의 신격으로 격하되며, 상고사는 신화로 전락하게 된다.

이러한 한 글자 차이가 역사 왜곡의 핵심이 되는 이유는, 단순한 해석의 차원이 아니라 민족사의 정통성을 지우고자 한 일제 식민사관의 전략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삼국유사의 기구한 운명

13세기 고려 후기, 일연 스님은 민족의 뿌리를 꿰어 하나로 잇는 이야기를 남겼다. 그것이 바로 삼국유사. 하지만, 이 위대한 기록은 오래도록 침묵 속에 잠들게 된다.

1512, 경북 경주에서 목판으로 인쇄된 삼국유사 정덕본(중종 임신본)은 고요한 조선의 땅에서 잠시 빛을 보았다. 그러나 임진왜란의 광풍 속에서 이 귀중한 책은 전리품으로 일본으로 건너가게 된다.

왜장 가토 기요마사. 그는 경주의 부윤 이계복이 간행한 이 정덕본을 가장 귀중한 전리품이라 여겼고, 이를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바쳤다. 이 책은 이후 일본에서 도쿠가와가 사랑한 책이 되었다. 일본 지식인 사회는 삼국유사에 매혹됐지만, 정작 조선 땅에서는 삼국유사의 존재조차 점점 잊혀졌다.


20세기 초 환국이라 쓰인 삼국유사의 발간

20세기 초. 조선이 일본 제국의 식민지가 된 이후, 삼국유사는 다시 일본에서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삼국유사연구의 불씨를 지핀 것은 일본 도쿄제국대학 국사학과였다. 츠보이 쿠메조라는 학자가 1904, (정덕본을 저본으로 한) 삼국유사를 사지총서(史地叢書)의 하나로 간행한 것이다.

이 책에는 당연히 '석유환국'으로 되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인 1904년 동경제국대학에서 발행한 삼국유사에는 석유환국(昔有桓國)이라고 되어 있다. 그것은 2년 전 동경제대 사학과에서 기존에 있던 삼국유사판본을 교정하여 발간한 것이다. 그런데 두 책 모두 사학과 대학원과정 교재로 사용된 책인데, 츠보이 쿠메조는 환국이라고 명확히 표기했다.



이마니시류의 덧칠 조작과 최남선의 분개

이에 적잖이 당황한 식민사학자 이마니시 류는 안정복이 소장했던 순암수택본을 일본으로 반출해 1921년 교토제국대학에서 영인 간행했다. 일본 경도(교토)제국대학 나이토 토라지로우(內藤虎次郞) 교수와 이마니시 류(今西龍) 조교는 삼국유사정덕본을 바탕으로 한 순암수택본 삼국유사를 간행한다. 이 책도 역시 정덕본이 모본이기에 환국桓囯이라고 쓰여 있다.

그런데 여기에 이마니시류가 환국이라 써 있는 부분에 덧칠을 가하여 환인으로 조작을 가한 것이다. 글자를 본 사람이면 누구나 날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육당 최남선은 이를 민족의 정체성을 지우는 천인의 망필이라 비판하며, 한 글자의 변조가 역사를 신화로 축소하는 교묘한 장치라고 경고했다. 그는 일본 학자 이마니시 류가 삼국유사석유환국(昔有桓國)”석유환인(昔有桓因)”으로 바꾸어 조작했다고 통렬히 비판했다. 그는 桓國은 우리의 시원이며, 그 말 하나를 지우는 것은 정체성의 뿌리를 지우는 행위라고 경고한 것인데 한 글자를 바꾸는 것은 한 나라의 시작을 지우는 일이다라는 그의 말은, 오늘날까지도 뜨거운 울림을 준다.



안정복의 잘못이라는 위서론자

그런데 일부 위서론자들은 표기를 이마니시가 아닌 안정복의 가필로 돌리려 했다. 삼국유사의 석유환국을 석유환인으로 변조한 것은 "이마니시류가 덧칠한 것이 아니라 순암수택본 삼국유사를 당초에 가지고 있던 순암 안정복 선생이 덧칠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주장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 주장이 맞으려면 순암수택본을 저본으로 삼았던 이마니시류가 1921년 교토제국대학에서 간행한 삼국유사영인본과 1932년 고전간행회에서 간행한 삼국유사영인본의 덧칠이 일치해야 한다. 그러나 누구나 보면 알듯이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이마니시류는 삼국유사순암수택본의 환국을 환인으로 보이게끔 찐하게 덧칠한 것이 확실했다.

안정복의 덧칠일 뿐 일본인 학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주장한 위서론자는 결국 팩트를 이기지 못하고 손을 들고 말았다. 

최종 덧칠을 가한 자는 이마니시류다. 덧칠한 자가 범인이다. 그 일본인 범인을 비호하려고 없는 얘기를 만들어 주장한 이는 친일파이거나 밀정의 역할을 수행했다고 말할 수 있다. 바꾸려고 애썼던 그 내용은 역사의 진실인 것이다. 옛적에 환국은 분명히 있었다.


환국은 단지 글자가 아니다 민족사의 정통성을 지키는 싸움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환국을 역사적 정통성의 기점, 국통맥의 출발점으로 복원하려고 했고 조선총독부 식민사관은 이를 환인(桓因)’이라는 신격으로 대체하며 역사 없는 민족으로 만들고자 했다. 결국 석유환국이냐 석유환인이냐는 단순한 필사 오류나 문자 논쟁이 아니다.


역사의 주인은 기억하는 자들이다

오늘날 桓國을 다시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것은 사라진 고대국가의 환상을 좇기 위함이 아니라, 식민사관이 훼손한 민족사의 근본을 복원하고, 잃어버린 한국인의 정체성과 자존을 되찾기 위한 일이다.

역사는 기록인 동시에 정신이다. 그리고 그 정신을 지키고자 했던 수많은 이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역사의 주인은, 그 역사를 끝까지 기억하고 다시 써내려가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 역사의 주인들이 지켜낸 역사를 우리는 계속 알려주어야 한다. 이제는 환인 천제가 건국한 나라 환국을 기억해야 한다. 알려야 한다. 모두가 배울 수 있는 역사로 후손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신화가 아니라 실존으로 말이다. 

0
0
이 글을 페이스북으로 퍼가기 이 글을 트위터로 퍼가기 이 글을 카카오스토리로 퍼가기 이 글을 밴드로 퍼가기

한민족의 국통맥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
19 3.1절과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한뉴스 2025-06-30 4
18 대한제국과 국민전쟁 대한뉴스 2025-06-30 8
17 ‘조선’ 이라는 나라 이름의 의미 대한뉴스 2025-06-30 4
16 고려 서경(西京) 위치 대한뉴스 2025-06-30 8
15 『환단고기』와 『요사』를 통해서 본 대진국 5경의 위치 대한뉴스 2025-06-30 5
14 한일 고대사의 비밀을 담고 있는 가야의 역사 대한뉴스 2025-06-30 4
13 1천년 신라의 첫 발걸음: 건국의 여정 대한뉴스 2025-06-30 5
12 백제는 서기전 31년에 소서노가 요서지역에서 건국하였다 대한뉴스 2025-06-30 5
11 「광개토태왕비문」과 『환단고기』의 정합성 대한뉴스 2025-06-30 6
10 한국사의 잃어버린 고리, 북부여 대한뉴스 2025-06-30 5
9 조선의 건국자, 단군은 살아있다 대한뉴스 2025-06-30 8
8 환웅천왕과 밝달나라[배달국倍達國] 대한뉴스 2025-06-25 11
7 문명사를 개척한 수메르(메소포타미아) 대한뉴스 2025-06-25 8
6 『삼국유사』와 ‘석유환국’‘석유환인’ 논쟁 대한뉴스 2025-06-25 8
5 문헌으로 살펴보는 환국 대한뉴스 2025-06-25 8
4 환국문화의 고향 유라시아를 가다!(환단고기 북콘서트 다시보기) 대한뉴스 2025-06-25 8
3 빛의 나라, 무병장수의 나라 환국 대한뉴스 2025-06-25 7
2 환국, 무병장수를 누린 황금시대 대한뉴스 2025-06-25 10
1 sadf 대한사랑 2025-04-29 12
EnglishFrenchGermanItalianJapaneseKoreanPortugueseRussianSpanishJavane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