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국통맥

1천년 신라의 첫 발걸음: 건국의 여정

단군조선은 삼신의 원리에 따라 나라를 진한·번한·마한. 즉 삼한으로 나누어 다스린 '삼한관경제'를 실시하였다. 대단군은 진한을 통치하고, 부단군은 번한과 마한을 각각 다스렸다. 이 진한의 일부 유민들이 남하해 경주일대에 6촌을 형성하면서 정착했다.

삼국사기』「신라본기에도 이보다 먼저 조선(朝鮮)의 유민이 이곳에 와서 산골짜기에 흩어져 살면서 여섯 촌락을 이루고 있었다(先是朝鮮遺民, 分居山谷之間爲六村)”라고 한 데서도 명확히 알 수 있다. 신라를 건국한 주체 세력은 고조선의 진한(辰韓) 유민이다. 

새로운 남쪽 진한(辰韓, 경주 일대) 지역에 정착했다가 자신들이 있었던 진한 지역의 북부여 황실에서 온 아이(박혁거세)가 성장하자 그를 왕으로 추대해 BC 57년 신라(新羅, 사로국·斯盧國)를 건국했다.

 

진한 6부가 신라 건국의 바탕

기원전 57년 알천 양산촌, 돌산 고허촌, 취산 진지촌, 무산 대수촌, 금산 가리촌, 명활산 고야촌의 6부 촌장들이 알천 언덕에 모여 박혁거세를 신라의 첫 임금으로 추대하였다.

육부전은 신라 건국 이전 서라벌에 있었던 6부 촌장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이후 신라 3대 왕인 유리왕이 6촌을 6부로 고치고 이들의 건국 공로를 기리기 위해 양산촌은 이 씨, 고허촌은 최 씨, 진지촌은 정 씨, 대수촌은 손 씨, 가리촌은 배 씨, 고야촌은 설 씨로 각각의 성을 내려 이들이 각 성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전한다.

 

박혁거세의 신라 건국

신라는 거의 천년(BCE 57~935)을 존속한 국가로 박혁거세(朴赫居世, 재위 BCE 57CE 4)는 이 신라의 건국 시조이다. 박혁거세의 탄생에 대해서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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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로의 첫 임금은 선도산 성모의 아들이다. 옛적에 부여 황실의 딸 파소가 지아비 없이 잉태하여 남의 의심을 사게 되었다. 이에 눈수에서 도망하여 동옥저에 이르렀다가 또 배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 진한의 나을촌에 이르렀다. 그때에 소벌도리라는 자가 이 소식을 듣고 가서 파소의 아이를 집에 데려다 길렀다. 나이 13세가 되자 뛰어나게 총명하고 숙성하여 성덕이 있었다.

이에 진한 6부가 함께 받들어 거세간이 되었다. 서라벌에 도읍을 세워 나라 이름을 진한이라 하였고, 사로라고도 하였다. (태백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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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부여황실의 공주 동신성모(東神聖母)인 그녀의 이름은 파소(婆蘇)’이다. (신단실기(神壇實記)) 

여기서 부여제실(夫餘帝室)북부여를 말한다. 연대를 추정해보면 박혁거세의 어머니 파소는 북부여 제5세 고두막 단군의 딸이다. 파소가 아버지없이 임신하였음으로 나라사람의 의심을 받아 동옥저에서 배를 타고 진한 나을촌(奈乙村)에 다다랐다. 이때 그를 거두어 기른 사람은 소벌도리라고 태백일사는 전하고 있다.

@삼국유사의 혈통 왜곡

삼국유사<감통感通> “선도산(仙桃山) 신모(神母) 본래 중국 제실(帝室)의 딸이었는데 이름은 사소(娑蘇)였다(神母本中國帝室之女, 名娑蘇)” 라고 하였고, 또 사소가 처음 중국에서 진한(辰韓)에 와서 박혁거세를 낳았다고 기록하여 파소와 박혁거세의 혈통을 중국 한()족 혈통으로 왜곡시켜 놓았다. 그러나 정작 중국 사서에 그런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이제 삼국유사를 보자.

(BCE 69) 3월 초하룻날 6부의 조상들이 각각 자제들을 데리고 다 함께 알천(閼川) 언덕 위에 모여 의논하기를 "우리들이 위로 백성들을 다스릴 만한 임금이 없어 백성들이 모두 방종하여 제멋대로 놀고 있으니 어찌 덕이 있는 사람을 찾아내어 그를 임금으로 삼아 나라를 창건하고 도읍을 정하지 않을 것이랴!" 하였다. 이때에 모두 높은 데 올라가 남쪽을 바라보니 양산(楊山) 밑 나정(蘿井) 곁에 이상한 기운이 번개처럼 땅에 드리우더니 웬 흰 말 한 마리가 무릎을 꿇고 절하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조금 있다가 거기를 살펴보니 자줏빛 알 한 개가 있고 말은 사람을 보자 울음소리를 길게 뽑으면서 하늘로 올라갔다. 그 알을 쪼개 보니 형용이 단정하고 아름다운 사내아이가 있었다. 알을 깨고서 어린 사내아이를 얻으니, 그는 모양이 단정하고 아름다웠다. 모두 놀라고 이상하게 여겨 그 아이를 동천(東泉)에 목욕시켰더니 몸에서 광채가 나고 새와 짐승들이 춤을 췄다. 그 아이를 혁거세왕(赫居世王)이라 이름한다. (삼국유사 1 기이1)

@광명의 상징 : , 혁거세, 불구내, 광명이세

삼국사기를 보면 박혁거세가 큰 알에서 태어났고 그 알의 모습이 박과 같이 생겨 박()으로 성을 삼았다고 되어있는데, 밝다’, ‘광명하다라는 뜻을 취해서 박으로 성을 쓴 것이라 보인다 또 혁거세라는 이름도 세상을 크게 광명하게 한다는 뜻이다. ()은 우리말로 '밝다', ()'있다', ()'세상'을 뜻하며, 이는 곧 세상을 밝힌다는 의미의 광명이세를 가리킨다. 박혁거세왕을 불구내(弗矩內)왕이라고 했다. 불구내(弗矩內)의 뜻은 광명하게 하다’, ‘해와 달이 맑게 빛났다’, ‘일월이 청명(淸明)이다란 구절이 삼국유사에 있다. 광명이세(光明理世). 밝은 빛으로 세상을 다스림. 밝은 빛으로 세상을 다스린다는 의미이다. 광명이세는 우리 민족의 정신과 깊은 관련이 있다.

 

나정(蘿井)

나정(蘿井)은 서기전 69년 박혁거세가 처음 태어났다고 전하는 곳으로 육부전에서 가까운 소나무 숲속에 있다. 지금은 흙으로 묻혀 있지만. 2002년부터 시작한 발굴 조사에 의하면 신라 시대 팔각 건물지와 유구가 확인된 바 있다. 팔각건물은 제사를 지내는 건물로 소지왕(또는 지증왕)대부터 시조 탄강처인 나을(奈乙)에 신궁을 건립했다삼국사기의 기록으로 볼 때 나정은 신라 시조 박혁거세 탄생지로서 신궁과 연계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박혁거세의 왕비 알영(閼英)

"이제 천자(天子)께선 강림하셨으니, 배필이 될 덕을 지닌 여군(女君)을 찾자!" 혁거세의 강림에 고무된 사람들은 이렇게 외쳤다.

 

용이 알영정에 나타나 그의 오른쪽 갈빗대에서 한 여자아이를 낳았는데, 입술이 닭의 부리처럼 생겼다. 이상히 여겨 월성 북천에 가서 씻으니 부리가 떨어지고 예쁜 입술이 나타났다. 한 할머니가 데려다가 길렀는데, 우물 이름을 따서 '알영'이라 이름지었다. 이 계집아이가 자라서 덕이 있거늘, 시조(박혁거세)가 이를 듣고 맞아서 왕비로 삼았다.”

 

알영은 박혁거세와 동등한 지위의 탄생설화와 신라 건국의 어머니로서 그 역할을 당당히 해냈던 신라시조 이성(二聖)의 한 사람이다.

 

왕비의 탄생지 알영정

알영정은 박혁거세의 왕비인 알영(閼英) 부인이 탄생한 우물인데, 바로 오릉의 숭덕전 뒤편에 있다

경주시 탑동에 있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비() 알영부인이 태어났다고 전해지는 우물로 경주오릉 내 숭덕전 대나무 숲 속에 위치하고 있다. 우물 위에는 길이 2m, 너비 50의 석재 3매가 덮여 있어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다.
@박혁거세의 묘와 오릉

박혁거세는 약 61년간 나라를 다스리다 경주시 탑동에 있는 오릉(五陵)에 묻혔다. 

오릉은 신라 초기 박씨 왕들의 무덤으로 전해지고 있다. 시조인 박혁거세왕과 그의 왕후 알영부인, 2대 남해왕(4~24), 3대 유리왕(24~57), 5대 파사왕(80~112)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사기에는 네 분의 왕을 담엄사 북쪽 사릉원 내에서 장사를 지냈다고 했다.

오릉에 대한 또 하나의 설이 있다. 삼국유사에 기록은 다음과 같다.

 

나라를 다스린 지 61년 되던 어느 날 왕이 하늘로 올라갔는데 7일 뒤에 그 죽은 몸뚱이가 땅에 흩어져 떨어졌다. 큰 뱀이 나타나더니 쫓아다니면서 이를 방해하므로 오체(五體)를 각각 장사 지내어 오릉(五陵)을 만들고, 능의 이름을 사릉(蛇陵)이라고 했다. -삼국유사

 

큰 뱀이 나타났다는 것으로 보아 뭔가 심상치 않은 변괴가 있는 죽음일 가능성이 있다. 삼국유사의 기록은 박혁거세 거서간의 시신이 다섯 갈래의 몸으로 흩어졌기에 이를 수습하여 묻어 둔 것이라는 설이다.

삼국사기에 보면 남해왕이 왕위에 오른 뒤 이렇게 말한다. "두 분(혁거세와 알영)의 성인이 세상을 떠나시고 내가 백성들의 추대로 왕위에 올랐으나, 이는 잘못된 일이다." 왕위를 자연스럽게 승계받은 것이 아니다. 백성들의 추대를 받았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삼국사기에는 혁거세왕 말기에 이런 기록을 남겼다. "두 마리의 용이 금성 우물에 나타났다. 우레와 비가 심하고 성의 남문이 벼락을 맞았다." 용이 두 마리 나타났다는 것은 반란이 일어났다는 뜻이다. 생각해 볼 만한 기록이다.

 

박혁거세를 허구로 모는 역사학계

 

알에서 태어난 것은 신화다. 신화죠?” (이모 교수 )

김수로왕 알에서 나왔습니다. 사람이 알에서 나올 수 있습니까? 생각을 해보세요 허황후도 마찬가지입니다.” (박모 교수)

 

어느 학술 토론장에서 강단사학의 대표주자였던 교수들이 쓴 말들이다. 알에서 태어날 수 없으니 이것은 모두 허구이고 신라 건국도 허구라는 주장을 서슴지 않고 하고 있다.

물론 박혁거세 설화에서 보여주고 있는 신비한 출생담은 신화적 내용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건국신화는 초월적 권위에 기대어 국가와 왕권을 신성시하여 황제(또는 왕)을 중심으로 백성을 하나되게 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와 같은 것이다.

 

조선 민족의 기원과 국가의 개창 형성에 이르기까지의 발전 과정에 관한 이 나라 고유의 사화, 이야기, 사설 등은 일체 무시하고 오로지 기록에 있는 자료에만 의거한다. (조선사편수회 사업개요, 47p)

 

일제 식민사학은 이 땅의 모든 사화들을 무시하여 사국, 오국의 건국 역사를 모두 허구로 몰아갔다. 이를 무조건적으로 계승하고 답습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우리 역사학계이다.

 

이에 대해서 임재해 교수는 말한다.

 

과학적 실증론은 고조선 사료를 신화로 간주하여 역사에서 배제해 버림으로써 해석학적 의사소통 자체를 아예 봉쇄해 버리는 방법론적 유아론에 빠져 있는 셈이다. 방법론적 유아론은, 모든 민족의 고대사 서술이 신화로 이루어진다는 역사학의 기본 상식조차 무시하게 된다. 실증사학의 유아론으로 건국 신화를 배제하는 것은 사실상 고대사의 지평을 가두는 일이다. (임재해, 고조선 문명과 신시문화, 125)

 

알에서 나왔으니 허구다? 이것은 정말 유아론적인 발상이라는 것이다. 임교수의 말을 더 들어보자.

 

역사는 허구와 과학으로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어깨를 걸고 함께 가는 것이다. 신화와 역사는 둘이면서 하나이다. 역사를 이야기하는 신화는 역사이며, 역사를 근거 없이 서술한 역사는 신화이다. 따라서 둘은 상호주관성 속에서 만나 소통할 필요가 있다. (임재해, 고조선 문명과 신시문화, 124)

 

주몽과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났다는데 사실인가?”라는 질문에 임교수는

 

당연히 있을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인 까닭이다. 표현의 과학성을 근거로 역사적 실체를 검증한다면 어느 나라 고대사든 대부분 부정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과학적 잣대를 사료의 표현에 들이대면 환웅과 단군은 물론, 조선의 건국 시조들까지 신화적 인물인 까닭에 고조선뿐 아니라 고구려와 신라, 가야, 고려, 조선의 역사까지 부정될 수밖에 없다. (임재해,고조선 문명과 신시문화, 145)

 

알에서 나온 것을 역사로 믿으십니까?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학계로 인해서 우리의 고대사 대부분 부정당하고 있는 형국이다.

세계 어느 곳이든 상고시대, 고대의 역사는 신화적, 설화적, 이야기적인 내용으로 전해온다. 신화가 곧 역사다. 신화와 설화가 고대의 역사다.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우리 역사를 쓸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신화와 설화를 기본 바탕에 깔고 있는 역사책이 지금 남아있는 삼국사기삼국유사이런 책들이다.

삼국사기삼국유사의 기록을 받아들이지 않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초기기록 불신론>은 궁극에는 우리 역사 특히 고대의 건국사를 부정하고 오히려 일본서기를 통해서 임나일본부설을 받아들이고 일제 식민사관을 도와주는 꼴을 만들기 십상이고 실제로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알에서 나온 사화를 가지고 있는 박혁거세의 탄생과 신라 건국을 대표적으로 해서 고구려의 건국, 백제의 건국, 가야의 건국을 모두 부정하여 일제 식민사학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 역사학계는 반성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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