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2 - 월간 대한사랑 24년 2월호 (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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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식민사학자들이 왜곡한 철령위 위치
                      이렇게 사료에 명확히 기록된 철령위 위치는 일본제국주의 학자들에

                    의해 철저히 무시되었고, 반도사관에 의해 한반도 내부로 설정되었다.
                    하야시 다이스케(林泰輔)는 심양의 철령위 존재를 사료를 통해 알고 있

                    었지만, 현 한국사의 뼈대로 활용된 『조선사』에서 ‘철령위는 압록강 근
                    방에 있었다가 후에 그 서북(심양)으로 옮기었지만 그 지명만은 옛날의
                    명칭인 철령위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라고 왜곡하였다. 강원도 원산만

                    철령위 비정 설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일본인 학자는 이케우치 히로
                    시(池內宏)로 그는 명의 철령위 위치를 집안으로 설정하면서 “위(衛)의 첫

                    시작은 길림성 집안시이지만, 마지막 위치가 오늘날 강원도와 함경도
                    사이에 있는 철령이기 때문에 위(衛)의 명칭을 철령위라고 하였다.”라고





































                             고려말 요동의 철령을 경계로 한 국경선과 철령위의 이동

               고려말기 철령위의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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